책여행 이효석 "도시와 유령"
도시와 유령
가산 이효석
중문을 들어서 정전 앞으로 몇 발짝 걸어갔을 때이다.
전날 밤에 나타났던 정전 옆 바로 그 자리에 헙수룩하게 산발한 두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벌써 어리석은 전날 밤의 나는 아니었다.
‘원 요런 놈의 도깨비가가 …….’
몽둥이를 번쩍 들고 사실 장군다운 담을 가지고 나는 그 자리까지 달려갔다.
하나!
나의 손에서는 만신의 힘이 맺혔던 몽둥이가 힘없이 굴러 떨어졌다. -유령장군이 금시에 미치광이 광대새끼로 변하여 버렸던 것이다.
‘원 이런 놈의…….’
틀림없던 도깨비가 순식간에 두 모자의 거지로 변하다니!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다음 순간 그 무엇을 번쩍 돌려 생각한 나는 또다시 몽둥이를 번쩍 들었다.
“요게 정말 도깨비장난이라는 거야.”
하나 도깨비란 소리에 영문을 모르는 두 모자는 손을 모으고 썩썩 빌었다.
“아이구, 왜 이럽니까?”
이건 틀림없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나가라면 그저 나가라든지 그래 이 병신을 죽이시렵니까. 감히 못 들어올 덴 줄은 알면서도 헐 수 할 수 없이…….”
눈물겨운 목소리로 이렇게 사죄를 하면서 여인네는 일어나려고 무한히 애를 썼다. 어린애는 울면서 그를 붙들었다.
역시 광대에 지나지 못한 나는 너무도 경솔한 나의 행동을 꾸짖고 겨우 입을 열었다.
“아니우, 앉아 계시우. 나는 고지기두 아무 것도 아니니.”
“네?”
모자는 안심한 듯한 동시에 감사에 넘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젯밤에 여기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소?”
무어가 무언지 분간할 수 없는 나는 이렇게 물었다.
“네? 나오다니요? 아무 것두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구 단지 우리 모자 밖에는 여기 아무 것두 없었습니다.”
여인네는 어사무사하여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럼 대체 그 불은?”
나는 그래도 속으로 의심하면서 주위로 눈을 휘둘렀다.
“무슨 일이나 생겼습니까? 정말 저희들 밖에는 아무 것두 없었습니다. 그리구 저희는 저지른 것두 없습니다. 밤중은 돼서 다리가 하두 아프길래 약을 바르려고 찾으니 생전 있어야지유. 그래 그것을 찾느라구 성냥 한 갑을 다 그어 내버린 일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고 여인네는 한쪽 다리를 훌떡 걷었다. 그리고 눈물이 그 다리 위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얼음장 풀리듯이 해득하기는 하였으나 여기서 또한 참혹한 그림을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훌떡 걷은 한편 다리! 그야말로 눈으로는 차마 보지 못할 것이었다. 발목은 끊어져 달아나고 장딴지는 나뭇개비같이 마르고 채 아물지 않은 자리가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그놈의 원수의 자동차…… 그나마 얻어먹지도 못하게 이렇게 병신을 맨들어 놓고…….”
여인네는 울음에 느끼기 시작하였다.
“자동차에요?”
“네, 공원 앞에서 그놈의 자동차에…….”
나는 문득 어슴푸레한 나의 기억의 한 귀퉁이를 번개같이 되풀이 하였다.
이효석의 〈도시와 유령〉(1928년작)은 그의 초기 문학 세계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동반자 문학(경향문학) 성격의 단편소설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메밀꽃 필 무렵〉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자연미와는 전혀 다른, 치열하고 비판적인 사회의식이 담겨 있는 작품이죠.작품의 핵심 내용
1. 핵심 요약
가산이효석 (1907~1942) 문단에서 "도시와 유령"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 발표 시기: 1928년 『조선지광』 7월호
- 수록: 1931년 첫 단편집 『노령근해』
- 형식: 일인칭 고발 형식, 미장이인 ‘나’의 시점
- 배경: 경성 동대문·동묘 일대, 도시 빈민의 삶
- 주인공 ‘나’는 일정한 일터도 없는 뜨내기 노동자로, 동대문과 동묘 처마 밑에서 노숙.
- 동료 김서방과 술을 마신 뒤 동묘 안으로 들어가는데, 희미한 도깨비불과 산발한 노파를 보고 놀람.
- 다음날 몽둥이를 들고 확인하러 들어가 보니, 그들은 도깨비가 아니라 자동차 사고로 불구가 된 노파와 아들.
- 갈래: 단편소설, 경향소설(동반자 문학)
- 배경: 1920년대 후반, 일제강점기 서울(경성)의 빈민가 및 공동묘지 주변
-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나'가 서술자)
- 주제:
- 자본주의 근대 도시화가 낳은 비극과 하층민의 참혹한 삶
-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 비판
2. 줄거리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지식인 '나'는 어느 날 밤, 괴기스러운 소문이 도는 한강 인도교(또는 공동묘지 근처)를 지나다가 정체모를 '유령'과 마주치게 됩니다.
공포에 질려 확인한 유령의 실체는 귀신이 아니라, 눈병에 걸려 실명 위기에 처한 채 갓난아기를 안고 구걸하는 비참한 행색의 부인(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다리를 다쳐 부조리하게 쫓겨나고, 방 한 칸 얻을 돈이 없어 온 가족이 서대문 감옥 뒤편 공동묘지 터나 다리 밑을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며, 진짜 무서운 것은 초자연적인 '유령'이 아니라 사람을 유령처럼 만들어 버리는 '도시(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함과 모순'임을 깨닫게 됩니다.
3. 핵심 감상 포인트
'유령'의 역설적 의미
소설 속 유령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와 근대화의 그늘에 가려진 '소외된 노동자이자 절대 빈민층'을 상징합니다. 사회적으로 존재하지만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하고 유령처럼 떠도는 하층민의 삶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도시'라는 공간의 이중성
도시는 화려한 문명과 발전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쓸모없어지면 버리는 비정함이 깔려 있습니다. 이효석은 화려한 도시의 외양과 비참한 유령(빈민)의 모습을 강렬하게 대비시킵니다.
이효석 문학의 반전
많은 이들이 이효석을 '자연파 작가'로만 기억하지만, 그는 등단 초기 카프(KAPF) 계열의 경향문학에 동조하는 동반자 작가로 활동했습니다. 〈도시와 유령〉은 그의 초기 날 선 사회의식과 리얼리즘적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한 줄 평 "진짜 공포는 무덤에서 나오는 귀신이 아니라, 자본과 도심의 콘크리트 속에서 인간성을 잃어버린 사회 그 자체다."